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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지리 파이널 2회

    주제

    1. 우리나라 주변 수역 이해
    2. 하천 지형 이해
    3. 지역별 농업의 특징 이해
    4. 권역별 도시 인구 규모 이해
    5. 지역별 1차 에너지 공급 구조 이해
    6. 서울의 지역 지역과 인접 지역의 인구 특징 이해
    7. 지역 특성에 따른 인구 변화 이해
    8. 시기별 국토 종합 개발 계획의 특징 이해
    9. 지역별 외국인 주민의 유형 비교
    10. 기업도시와 혁신도시 비교
    11. 한반도의 주요 암석의 분포 및 지질 시대벼 지층 분포 파악
    12. 해안 지형의 특성 이해
    13. 주요 제조업의 시도별 분포 특성 파악
    14. 서울, 부산, 인천의 인구 이동 특성 파악
    15. 기온과 강수의 지역 차 이해
    16. 주요 도시 간 여객 통행량 차이 이해
    17. 시설별, 지역별 자연재해 피해액 이해
    18. 영남 지방의 지역성 이해
    19. 충청 지방의 지역성 이해
    20. 북한 주요 지역의 기후 특성 이해

  • 한국지리 2027 수능 대비 EBS 파이널 교재

    • PDF 파일
    • 김은한, 정다현, 김다나

    1회

    2회

    • 1번 : 내수, 영해, 배타적 경제 수역
    • 2번 : 하천 지형 이해
    • 지역별 농업의 특징 이해
    • 권역별 도시 인구 규모 이해

    3회

    4회

    5회

    6회

    7회

  • 팔도

    • 8도
    • 팔도 비빔면
    • 16도 비빔면

    • 경기도
    • 경상도 (경주+상주)
    • 평안도 (평양+안주)
    • 전라도 (전주+나주)
    • 충청도 (충주+청주)
    • 황해도 (황주+해주)
    • 함경도 (함흥+경성)
    • 강원도 (강릉+원주)

    메모

    • 한국지리
    • 통합사회
  • 과학 혁명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의 시기는 ‘지적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위대한 과학자가 많이 등장하여 ‘천재의 세기’로도 불렸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과학적 업적을 ‘과학 혁명’이라고 총칭한다. 이는 르네상스 이래로 여러 과학 지식이 누적되고, 재정·군사 국가들이 과학을 후원한 결과였다.

    뉴턴은 저서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우주의 모든 현상을 간단한 수학 공식으로 설명하였고, 우주는 신의 섭리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신 중심의 전통적인 우주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다. 뉴턴의 이러한 우주관은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 엘리자베스 1세

    헨리 8세는 아들을 낳지 못한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을 반역죄로 처형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 1세가 왕위를 계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8세의 뒤를 이은 이복동생 에드워드 6세가 요절하고, 그 뒤를 이은 언니 메리 여왕이 즉위한 지 5년 만에 사망하면서 극적으로 왕위를 잇게 되었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의 시련은 계속되었다. 재위 기간 내내 가톨릭 세력이 계획한 암살 시도와 반란의 음모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유럽 열강의 왕족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왕자를 낳아야 한다는 수많은 귀족들의 권고를 뿌리쳤다. “나는 이미 영국과 결혼하였다.”라고 선언한 엘리자베스 1세는 왕권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였다.

  • 중상주의

    재정·군사 국가의 군주들은 관료제와 상비군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였다. 군주들은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상공 시민 계층을 지원하여 재정적 지원을 받고자 하였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시행된 일련의 정책을 ‘중상주의’라고 한다.

    중상주의 정책은 크게 3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1단계에서는 금을 획득하여 국가의 부를 증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이에 따라 여러 국가가 식민지 경영에 뛰어들었다. 2단계에서는 다른 나라가 가지고 있는 금을 차지하기 위해 수출은 증대하되, 수입을 억제하였다. 마지막으로 3단계는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국내 산업을 보호·육성하고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여하는 것이다.

  • 바로크 양식

    바로크의 어원은 ‘비뚤어진 진주’라는 의미의 포르투갈어이다. 그리스·로마의 고전적 건축 양식이나 예술을 최상으로 여긴 사람들이 바로크 양식을 낮게 평가하고자 붙인 말이다.

    바로크 양식이 유행하기 시작한 17세기 유럽에서는 종교 개혁이 한창이었다. 교황은 종교 개혁에 대항하면서 구교도들의 종교적 감성을 고양하고자 예술 작품을 활용하였다. 대규모의 성당과 눈길을 끄는 예술 작품으로 구교도들의 신앙을 견고히 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바로크 양식은 이후 프랑스 루이 14세가 건립한 베르사유 궁전에 영향을 미쳤다. 여러 지역으로 전해진 바로크 양식은 국가별로 조금씩 차이를 보이며 각기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 루이 14세

    루이 14세는 1643년부터 1715년까지 약 반세기 동안 프랑스를 통치하였다. ‘짐은 곧 국가다.’라는 원칙을 내세운 루이 14세는 강력한 전제 군주제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루이 14세는 왕권이 절대적임을 선언하고 콜베르를 재무 장관으로 등용하여 중상주의 정책을 펼쳤다. 또한 플랑드르 전쟁, 네덜란드 전쟁, 아우크스부르크 동맹 전쟁, 에스파냐 계승 전쟁 등 연이어 전쟁을 강행하였다. 루이 14세의 절대적인 왕권을 상징하는 베르사유 궁전은 이후 유럽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나 연이은 전쟁과 신교도를 박해하는 정책 등으로 프랑스는 점차 쇠퇴하였다.

  • 재정·군사 국가

    재정·군사 국가는 효율적으로 징세하고, 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중앙 집권 정책을 펼쳤다. 이 시기 중무장한 봉건 기병에서 화약 무기로 무장한 직업 보병으로의 이행은 재정·군사 국가의 출현을 주도하였다. 지배자들은 중앙 집권을 견고히 하고, 대규모의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높은 세금을 부과하였고 다른 지방 세력들을 억제하였다.

    그러나 중앙 집권을 시도하는 국가에 대한 봉건 귀족과 도시 상공인 계층의 반발도 거세게 일어났다. 이 시기 유럽의 역사는 다른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자국의 지위를 끊임없이 지키고자 투쟁하는 역사인 동시에 대내적으로는 권력의 독점을 꾀하는 국가와 이에 저항하는 사회 집단 간의 갈등으로 점철된 역사였다.

  • 종교 전쟁

    구교와 신교의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잦은 종교 전쟁이 발생하였다. 특히 독일에서 시작된 30년 전쟁(1618~1648)은 여러 나라가 참전하면서 국제 전쟁의 성격을 띠었다.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이후 신성 로마 제국과 교황은 신교를 믿는 지역을 가톨릭 제후의 통치 지역으로 포섭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신교 측은 프리드리히 5세를 중심으로 신교 연합을 구성하였다. 이후 1619년 가톨릭교도인 페르디난트 2세가 황제가 되면서 신교를 탄압하자, 보헤미아 지역에서는 프리드리히 5세를 왕으로 추대하며 저항하였다.

    페르디난트 2세는 가톨릭 연맹과 에스파냐의 지원을 바탕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나 이후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 신교를 지원하고 에스파냐, 오스트리아 등이 구교를 지원하면서 전쟁은 장기화하였다. 이 전쟁으로 에스파냐의 동맹국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는 큰 타격을 받았고, 프랑스가 유럽의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